대표전화
■ '무는 개' 때려 죽였다…'과잉 반격' 논란?
지난달 23일 오후 2시 30분쯤. 강원도 강릉시의 한 민박집에 이웃 주민 A씨가 들어섰습니다. 그때 집에 있던 반려견(4살·몰티즈종)이 짖다가 A씨를 물었습니다. 집주인 B씨는 A씨를 내보내고 반려견을 안방으로 옮겼습니다. 다시 안방까지 들어온 A씨는 반려견을 바닥에 여러 차례 내리치고 주먹과 발로 때렸습니다. 반려견이 죽자 B씨는 A씨를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해당 사건과 관련, 경찰은 양측 당사자들을 불러 경위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씨의 재물손괴 및 동물보호법 위반, 견주(犬主)인 B씨 측의 과실치상 혐의 여부 등이 쟁점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 논란이 되는 A씨의 '과잉 반격' 여부도 판가름 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7월 울산 초등학생 피습 등 최근 '개 물림 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지목되는 가운데, '개의 공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누군가의 반려견에게 공격받은 사람이 개를 때리거나 죽일 경우, '어디까지 정당방위로 인정할 것이냐'가 문제인데요.
개의 공격에 맞서 반격할 때, '정당방위 기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 법률상 개는 '물건'…타인이 해칠 경우 '재물손괴죄' 적용도
개는 동물이지만 법률상 '물건(재물)'으로 취급됩니다. 따라서 개를 해칠 경우 '동물보호법(동물학대 등 금지) 위반'과 별개로 '재물손괴죄' 혐의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르던 개에게 타인이 상해를 입거나 사망할 경우, 견주는 '과실치상·과실치사' 혐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을 수 있고, 관리 소홀로 인한 '동물보호법(맹견·등록대상동물 관리) 위반'에도 해당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개의 공격을 방어하거나 물리치는 과정에서, 개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개 자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선 개의 공격이 '자연적 발생'인지 '견주의 고의'인지에 따라 사건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견주의 통제에서 벗어나 개 스스로 공격한 것이라면 '재해'의 일종이 되고, 이에 대응하는 사람의 행위는 '긴급피난'에 해당됩니다.
반면 견주의 명령을 통해 또는 견주가 알고도 방치해 이뤄진 개의 공격이라면, 사람의 반격은 '정당방위' 문제가 됩니다. 이 경우 견주는 과실 차원을 넘어 특수 도구(개)를 사용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취급될 수 있습니다.
■ 정당방위 판단 기준 ①: "얼마나 위급한 상황이었나?"
이렇게 세부적으로는 '긴급피난' '정당방위' 문제로 나눠지지만, 법조계에서는 통틀어 정당방위로 일컫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이의 '개에 맞선 반격'이 정당방위로, 다시 말해 법적으로 '정상 참작'을 받으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고려돼야 합니다. 관련 판례가 드물고 법적 잣대가 확실하게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사건마다 '정황'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사람이 ‘공격하는 개’를 살상(殺傷)했을 때, ‘과잉 반격 여부’를 법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상황의 위급성 ▲견종(犬種)의 위협성 ▲공격의 지속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첫째, 당시 상황이 얼마나 위급했는지가 관건입니다. 개를 해쳐야만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는지 여부입니다. '피해자가 노약자였는지' '시간대가 낮이 아닌 밤이었는지'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었는지' 등을 살피게 됩니다.
문강석 법무법인 청음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과거에 개한테 물린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개를 폭행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정당방위로 마무리됐다"며 "그런데 만약 반격 수준이 개를 죽이는 데까지 이르렀다면 정당방위를 넘어 과잉방위가 될 수도 있다. '위험을 피하고자 한 정당한 행위'였는지는 여러 가지 정황을 통해 판단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동훈 법무법인 더함 변호사는 "예를 들어 개가 팔목을 물었는데 어떤 힘을 써도 5~10분 동안 절대 안 놓더라. 이럴 때는 조금 과한 행동을 해서 떼어내더라도 정당방위가 성립할 가능성이 있다"며 " 곁에 도와줄 사람이 있었는지, 아니면 야밤에 혼자 있는 상황이었는지 등 당시 환경 조건도 (정당방위 여부를 따질 때) 고려 대상이다. 사람의 불안감이 극도로 높았던, 진짜 위급한 상황이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정당방위 판단 기준 ②: "위협적이고 '맹견'이었나?"
둘째, 개의 품종이 사나운 성격으로 알려진 이른바 '맹견(猛犬)'에 해당하거나 몸집이 커서 공격 태세가 위협적이었는지도 중요합니다.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에 규정된 맹견으로는 '도사견과 그 잡종의 개' '아메리칸 핏불테리어와 그 잡종의 개'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와 그 잡종의 개' '스태퍼드셔 불 테리어와 그 잡종의 개' '로트와일러와 그 잡종의 개' 등이 있습니다.
우아롬 변호사는 "해당 견종들을 맹견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공격성 등이)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이라며 "그런 개가 공격하는 행위는 모든 사람들이 위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아닌가. 당연히 정당방위 고려 사항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통상 개를 다치게 하거나 죽이면 (재물)손괴나 동물 학대가 되는데요. 이를 '위법성이 없는 정당한 행위,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긴급한 피난 행위로 볼 수 있는지'에 관한 명확한 판결은 없습니다. 다만 예를 들어 개가 '맹견'이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공격해와서 옆에 있는 막대기를 들어 살상을 했다면 '위법성이 조각(실질적으로 위법하지 않게 됨)'될 겁니다. 그런데 조그마한 강아지가 손가락을 살짝 물었다고 발로 복부를 걷어차서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 '과잉 방어' '과잉 피난' 행위에 해당되겠지요."
- 이승재 법무법인 리앤파트너스 대표 변호사
■ 정당방위 판단 기준 ③: "공격이 지속적이었나?"
셋째, 가장 핵심적인 판단 기준이 바로 '공격의 지속성'입니다. 사건 초반에 난폭한 개가 맹렬하게 달려들더라도 '공격이 끝난 상황에서' 때리고 죽인다면, '방어'가 아닌 '보복'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과잉 대응'으로 판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장세진 법무법인 법승 변호사는 " 몽둥이를 휘둘러서 개를 쫓아내는 정도면 괜찮을 텐데, 개가 힘을 잃어서 쓰러져 있는데 몽둥이로 계속 내리친다면 구체적인 (법적) 판단이 필요할 것"이라며 "사람 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정당방위 인정 범위가 생각보다 넓지 않기 때문에, 하급심 판례들은 사실 '가능하면 자리를 피하는 걸' 권고하고 있다. 상대 측 개가 우리를 공격한다고 가정했을 때도, 일단 피하는 게 답"이라고 말했습니다.
김경태 법률사무소 태희 변호사도 "정당방위 판정에 있어 공격의 지속성은 매우 중요하다"며 "가령 개가 아직 물지도 않은 상황에서 '물 것 같으니' 미리 발로 차는 식의 행동은 정당방위로 인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 전문가 "이빨 드러내고 꼬리 짧게 흔들면 조심…반격보다는 '대피'와 '방어'로 대처해야"
근래 들어 개 물림 사고는 빈발하고 있습니다. 소방청이 공개한 연도별 '개 물림 119 구급 이송 현황'을 보면 2020년에만 2,114건의 개 물림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전 해에도 매년 2,000건을 상회, 하루 평균 6건꼴로 일어났습니다. 질병관리청은 '2021년도 국내 공수병 교상환자 발생 감시 현황'에서 "개에 의한 교상(咬傷·짐승이나 벌레 등에 물려서 상함) 건 중, 반려견은 76.2%, 사육견 15.2%, 유기견 8.6%로 확인됐다"고 분석했는데요.
앞서 장세진 변호사의 말처럼 실제 '개의 공격에 대한 사람의 반격'이 정당방위로 인정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이상 열거한 기준대로, 사례별로 정황 분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명확하게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법조계에서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개의 습격을 받은 사람이 반격을 감행하기보다는 가능한 '신속하게 대피'하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 '시선 돌리기'로 대처하기를 권장합니다. 동물 행동 전문가들도 '개 물림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섣부른 반격' 대신 '방어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찬종 동물 훈련사는 앞서 KBS와의 인터뷰에서 " 개가 갑작스럽게 달려들어서 무는 '선제적 공격'의 경우, 손으로 목을 감싸고 '태아 자세'를 취해 장기를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개가 이동할 때까지 가만히 있어야 한다"며 " 개가 짖다가 달려드는 '방어적 공격'을 하는 경우에는 자세를 낮추지 말고 등을 보이지 않은 채 뒷걸음질을 치면서 현장을 빠져나와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개를 특별히 경계해야 할 상황이 있을까요?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7월 KBS와의 인터뷰에서 "가정에서 키우는 조그마한 개들은 짖거나 싫어하는 표정, 스트레스 받는 표정을 지을 때" 경계해야 한다며, " 길이나 산에서 덩치가 큰 개를 만났을 때는, '납작 엎드려 으르렁거리거나' '눈에 흰자가 보이고 이빨을 드러내거나' '꼬리를 흥분해서 흔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웅종 연암대학교 동물보호계열 교수는 과거 KBS 프로그램 '위기 탈출 넘버원'에서 "개가 꼬리를 짧게 흔드는 행동은 공격 신호라 볼 수 있다"며 "반가움의 행동으로는 상하좌우로 넓게 움직이지만, 짧게 움직이고 긴장하는 것은 위협이 될 수 있는 하나의 표현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 '개통령' 강형욱 "반려견 '입마개 적응 훈련' 필요…누구도 물려선 안 돼"
한편 애초에 개 물림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견주의 '반려견 관리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법적으로 맹견에 속하지 않더라도, 사람을 문 적이 있거나 공격성이 강한 견종이라면 외출 시 입마개를 착용시키고, 목줄 길이도 적절하게 조절해 견주가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을 함부로 공격하지 않도록 평소에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강형욱 반려견 훈련사는 보듬컴퍼니 사이트에 게재한 칼럼에서 "모든 반려견에게 '입마개 적응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사시 내 반려견이 부드럽게 핸들링받기를 원하고, 누구도 내 반려견의 실수에 상처를 입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며 " 물고 싶어 하는 반려견에게 물 수 있게 하는 것은 교육도 친절도 아닌, 방임이다. 반려견 훈련사든, 반려견 미용사든, 동물 수의사든, 옆집 강아지든, 친한 동호회 지인이든, 돈 내고 들어간 애견 운동장에서 만난 강아지든, 절대 누구도 물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48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