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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 감수성과 무죄추정의 원칙, 그리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 [이승우 변호사]

조회수 : 69

 

 

법무법인 법승 이승우 대표변호사

 

 

성범죄는 대한민국 형사사법체계의 변화의 중추였습니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면, ‘대한민국의 형사 사건은 성범죄와 성범죄 아닌 범죄로 양분된다’ 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실로 성범죄는 2000년대 대한민국 사회의 변화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좌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대법원은 2005년 7월28일 “노래방 도우미 강간치상 사건을 통하여 피해자의 ‘범행현장 이탈 가능성’과 ‘사력을 다한 반항이 없었음’은 강간죄 성립을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정립하였습니다. (대법원 2005도3071 판결) 그러나 위 판결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일반적 판단 기준까지 설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성범죄는 증거 확보가 어렵고, 종종 피해자의 진술이 사건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로 작용합니다. 또한 국민참여재판 적합성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배제결정이 이뤄는 범죄이기도 합니다. 같은 성적 행위일지라도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강제가 될 수도 있고, 자유로운 성관계가 될 수도 있으므로 그 객관적인 사후 판단이 매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2018년 10월25일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고 판시하며,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는 진술 증명력 판단 기준을 과감하게 선언하였습니다. (대법원 2018도7709 판결)
이 판결은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려면, 객관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수용될 수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이 대립되고, 직접적으로 피해자의 진술을 탄핵할 수 있는 증거가 규명되지 않는다면, 성차별적 사회 구조와 피해자의 처한 상황을 고려해 피해자의 진술을 배척하지 않아야 함을 명시적인 일반 판단 기준으로 정립한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은 형사 재판의 기본 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과 충돌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성범죄 피해자의 ‘소극적 태도’, ‘거부에 대한 의사표시의 부존재’가 모두 피해자의 사후 진술의 신빙성의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평가에 관한 일반화의 오류, 자유심증의 제한 그리고 실질적 유죄추정의 함정에 빠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형사 재판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피고인이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고통스럽지만 버릴 수 없는 기본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모든 형사 절차에서 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할 책임’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성범죄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진술이 핵심 증거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고, 물리적 증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자의 진술에 크게 의존하게 되고, '대법원 2018도7709 판결'의 법리에 따라 피해자의 진술이 증거로서 신빙성을 의심받지 않는 특별한 지위에 놓이게 됨으로써 ‘합리적 의심’을 배제한다는 법관의 자유심증주의는 형해화 되는 문제와 수사기관의 성범죄 유죄 추정의 관행이 성립될 구체적 위험이 존재하였습니다.
대법원은 2024년 1월 4일 ‘피고인은 물론 피해자도 하나의 객관적 사실 중 서로 다른 측면에서 자신이 경험한 부분에 한정하여 진술하게 되고, 여기에는 자신의 주관적 평가나 의견까지 어느 정도 포함될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의 객관적 사실에 대하여 피고인과 피해자 모두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만을 진술하더라도 그 내용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항시 존재한다’라는 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결 이유를 설시하며, ‘성인지 감수성’에 따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의존에 대하여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른 엄격한 제한과 ‘합리성의 평가’가 필수적임을 선언하였습니다. (대법원 2023도13081 판 )
성인지 감수성은 전세계적인 개념이지만, 이를 사법적으로 진술 신빙성 척도로 반영한 것은 대한민국 법원이 유일무이 합니다. 인권은 존중돼야 하겠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을 포기할 수 없으며, 피해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합리적 의심의 배제’라는 형사사법의 대원칙이 감수성이라는 불분명한 이념에 의하여 훼손돼서는 안된다 할 것입니다.

 

 

 

출처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4/0005258613?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