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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식화된 판단, 자동화된 사법의 위험 : 피해자와 피고인을 지우는 정의의 오류
작성자 : 이승우 변호사 (법무법인 법승 / 형사법 전문변호사)
📂 목차
1. 자동화된 사법, 무엇이 문제인가?
• 사건 처리 절차의 기계화
• 사람 없는 정의의 시스템
2. 도식화된 판단이 만드는 두 가지 침묵
• 피해자의 고통은 도식 밖에 있으면 지워진다
• 피고인의 사정은 진실이 아니라 ‘유형’이 된다
3. 고의와 과실, 그 굽은 벽을 넘어서
• 고의 추단의 편의성
• 미필적 고의의 전능화와 사법 편의주의
4. 반복되는 억울함, 그 구조를 파헤친다
• 보이스피싱 수거책 사건
• 구조적 사기에서 기망과 실패의 경계
• 성범죄 사건에서 ‘직관적 고의’의 오류
5. 말할 기회를 지우는 사법, 그 피해는 누구의 것인가?
• 피해자는 피해자가 아니게 되고
• 피고인은 설명할 기회를 잃는다
6. 형사변호사의 역할은 ‘말하게 하는 것’이다
• 인간을 구조화된 도식에서 꺼내기
• 질문을 통해 진실의 시작점 만들기
7. 결론 : 우리는 누구를 위해 정의를 실천하고 있는가?
• 민주주의 사법에 필요한 건 생각하는 정의
• 도식화된 정의에서 인간 중심 사법으로
🏛 자동화된 사법, 무엇이 문제인가?
오늘날 형사사법 시스템은 사건 수가 많고 처리가 급박하다는 이유로, ‘자동화된 절차’와 ‘유형화된 대응’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유형별 사건 처리 매뉴얼을 따르고, 검사는 전형적 범죄 구조에 따라 기소하며, 판사는 반복된 양형 데이터에 의존해 판단을 내립니다.
이러한 구조는 효율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는 있으나, 개별 인간의 삶과 고통을 사라지게 만드는 비인간화의 위험성을 동반합니다. 사건의 맥락과 사람의 진심은, ‘기준’과 ‘패턴’에 맞지 않으면 제거되는 정보로 간주됩니다.

💭 도식화된 판단이 만드는 두 가지 침묵
✅ 첫째, 피해자의 고통이 무시되는 경우입니다.
피해 사실은 있으나, 그것이 ‘형법상 요건’이나 ‘전형적 피해자상’에 맞지 않으면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성범죄 사건에서 정형화된 ‘저항’이 없었다는 이유로 피해를 의심하거나,
보이스피싱 피해자 중 낯선 계좌에 송금한 이들의 부주의를 근거로 인정되지 않기도 합니다.
✅ 둘째, 피고인의 해명이 삭제되는 경우입니다.
단순한 무지나 기망에 의해 행위했음에도, 정해진 ‘고의 판단 공식’에 따라 책임이 구성됩니다. “그 정도면 알았을 것”이라는 문장 하나로, 행위의 의미는 ‘범죄’로 재구성 됩니다.
⏳ 고의와 과실, 그 굽은 벽을 넘어서
형법은 ‘고의와 과실’이라는 구조로 책임의 강도를 판단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경계는 심리적 추정과 경험적 직관으로 뒤섞여 있습니다.
✅ 보이스피싱 수거책 사건
청년이 단순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심부름을 했다가, 돈을 받았다는 이유 만으로 고의로 판단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 구조적 사기 사건
다단계 또는 유사수신 사업이 실패로 귀결되었을 때, 실패와 기망의 경계가 흐려지고 모든 손실을 피의자의 ‘기망’으로 재단합니다.
✅ 음주 후 성범죄 사건
피해자의 거부 표현이 뚜렷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동의’로 추정되거나, 피의자의 착오가 ‘미필적 고의’로 전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행위의 인식 수준과 책임 정도를 무시한 기계적 판단은 억울한 처벌로 이어지며, 법이 의도하지 않은 형벌권의 남용을 낳습니다.
🔍 반복되는 억울함, 그 구조를 파헤친다
사법기관의 판단은 단지 법리 해석이 아니라, 사건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문제는 그 시선이 점점 도식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해진 구조, 정해진 서술, 정해진 추정… 그 결과 우리는 아래와 같은 현상을 보게 됩니다
📌 피해자는 "당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이유로 고통을 인정받지 못하고,
📌 피고인은 “그런 경우는 다 알면서 한다”는 이유로 말할 권리를 잃습니다.

⚖ 말할 기회를 지우는 사법, 그 피해는 누구의 것인가?
자동화된 사법은 누구의 고통에 귀 기울일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피해자의 고통이든, 피고인의 억울함이든, 도식에 맞지 않으면 무시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반복되는 억울함의 본질입니다.
형사사법은 개인을 이해하기보다, 개인을 ‘정형화된 틀’에 맞추려는 순간 정의를 잃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보는 법”을 잊고, “사건을 처리하는 법”만을 기억하게 됩니다.
📋 형사변호사의 역할은 ‘질문’을 되살리는 것
저는 형사변호사로서, 피해자든 피고인이든 다시 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 믿습니다. 사법이 사람을 잊을 때, 변호인은 사람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자여야 합니다.
💬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그가 정말로 알았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녀는 정말로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까?”
“이것이 정말로 ‘패턴’에 불과합니까, 아니면 한 사람의 삶입니까?”
질문은 진실의 시작입니다.
🧭 결론 : 우리는 누구를 위해 정의를 실천하고 있는가?
사법은 속도를 내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을 지키는 성찰의 장이어야 합니다.지금 우리가 마주한 도식화, 자동화, 유형화된 판단은 피해자도 피고인도 소외시키는 ‘절차적 정의’의 파산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
“이 판단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정의는 누구를 제외하고 작동하는가?”
그 질문으로부터, 정의는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말과 글 그리고 경험은 여러분의 운명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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