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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용건부터 김선호까지… 어디까지가 낙태 강요이며 합의일까

조회수 : 94

 

 

 

 

 

“지금 아이를 낳으면 9억이라는 손해배상을 해야 하고 자기는 지금 당장 9억이 없다고… 알고 보니 9억이란 위약금을 낼 필요도 없었는데 거짓 사실로 낙태할 것을 회유했습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 온 ‘대세 배우 K모 배우의 이중적이고 뻔뻔한 실체를 고발합니다’라는 글 중 일부다. 이 글에 나오는 K 배우는 최근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등으로 인기를 모은 김선호(35)씨. 글쓴이는 “지키지 않을 약속을 미끼로 낙태 회유를 하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라며 “생각보다 이런 쓰레기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썼다. 해당 배우의 지인 등은 ‘(낙태하러 가기 전) 두 사람이 눈이 퉁퉁 부어서 내려왔다’ ‘(김선호가) 2주 동안 미역국을 끓였다’ 등의 주장을 하며 이에 반박하고 있다. 김씨는 “제 불찰과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그분께 상처를 줬다”며 공식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지난 8월에는 배우 김용건(75)씨가 39세 연하의 A(36)씨로부터 낙태 등을 강요한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이후 김용건씨가 출산과 양육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나서면서 고소는 취하된 상태다.

 

대한민국에서 낙태는 오랜 기간 형사 처벌을 받는 죄였지만, 더 이상은 그렇지 않다.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다. 그러나 최근의 연예계에선 연이은 ‘낙태 강요' 논란이 터지고 있다. 낙태죄가 사라진 지금, 과연 어디까지가 낙태 강요이며 합의인 걸까.

 

 

◇대한민국에 ‘낙태 강요죄’는 없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부녀가 약물이나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의 형법 제269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이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라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헌재는 혼란을 막기 위해 원래 형법 조항 효력을 2020년 12월 31일까지 유지하면서 대체 입법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지만, 정부와 국회는 그러지 못했다. 낙태죄 전면 폐지부터 임신 24주까지 허용 등의 다양한 개정안이 나왔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낙태죄의 효력만 올해 1월 1일부터 자동 소멸됐다. 처벌 조항은 사라졌지만, 관련한 법안이나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불분명한 ‘아노미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낙태를 종용하거나 방조한 남성에 대한 처벌도 어려워졌다. 기존에는 낙태 자체가 죄였기 때문에, 낙태를 종용하거나 방조한 남성도 형법 31조(교사범)와 32조(종범)에 의거해 낙태교사죄 또는 낙태방조죄로 처벌할 수 있었다. 법무법인 법승 이승우 대표변호사는 “낙태죄와 낙태교사죄는 주종관계에 있는 범죄로 행위자는 낙태죄, 회유한 사람은 낙태교사죄와 같은 식으로 처벌받았다”며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만큼 현재로서는 교사한 사람에 대한 처벌 규정도 정지된 상태”라고 했다.

 

배우 김용건씨가 피소당했을 때도 일부 언론이 ‘낙태 강요 미수죄’라고 했으나, 이는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형법상 ‘낙태 강요죄’나 ‘낙태 강요 미수죄’는 없기 때문이다.

 

 

◇강요와 합의의 차이는?

 


대신 전문가들은 낙태 과정에서 ‘강요’를 한 경우, 형법상 강요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형법 제324조(강요) 1항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김용건씨도 고소 당시 혐의는 ‘강요’였다.

 

리앤파트너스 엄민지 변호사는 “폭행이나 협박으로 피해자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일을 하게 할 경우 강요죄가 성립된다”며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더라도 위협을 느낄 만한 구체적인 협박 정황이 확인된다면 강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의견 제시나, 이 과정에서의 사소한 다툼 정도로는 강요죄 성립이 어렵다고 했다. 엄 변호사는 “단순히 ‘아이 낳지 마라’ ‘가만두지 않겠다’와 같은 표현이 강요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며 “인플루언서라고 한다면 ‘네 물건을 사주는 팔로어에게 메시지를 보내 소문내겠다’ ‘너희 거래처 사장에게 말해서 이 업계에서 일을 못하게 하겠다’와 같이 구체적으로 해악을 고지했는지에 따라 강요죄 여부가 달라진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대화 내용 자체가 ‘종용’인지 ‘회유’인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법적으로 종용이라는 건 선택의 여지가 없고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나의 의사결정 자유가 거의 0에 가까워지는 상황이라면, ‘회유’는 조금 더 설득에 가깝다”고 했다. 상대가 경제력이 없는 상황에서 ‘낙태하지 않으면 양육비도 주지 않고 너와의 관계도 끝내겠다’는 종용으로 강요죄가 될 수 있지만, ‘낙태하면 결혼해서 너와 같이 살게’는 회유에 가까워 강요라고 보기 어렵다.

 

 

◇'낙태 강요죄' 신설 요구도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7년 인공임신중절률(1000명당 임신중절 건수)은 4.8%. 한 해 4만9764건의 인공임신중절이 시행됐다. 성경험이 있는 여성의 10.3%, 임신 경험 여성의 19.9%가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했다’고도 했다. 조사 당시에는 낙태 자체가 불법인 상황이어서, 현재는 훨씬 더 많은 낙태가 이뤄질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직접적 낙태 강요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낙태 강요죄’를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바른인권여성연합 전문위원장 연취현 변호사는 “여성은 낙태를 원하지 않는데, 예비 시어머니가 이를 강요해서 도망 다니는 상황 등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여성의 자의가 분명하게 침해되는 사례들이 있다”며 “이런 사례들은 형법상 강요죄로 처벌받기는 어렵지만, 낙태죄가 없어지면서 보호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연 변호사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이런 사례들이 지금도 생기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아질 수 있다”며 “아무런 규율이 없이 서로 외면만 하고 있는 무법 상태부터 바꿔야 출산하고 싶은 여성과 생명이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3649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