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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탐색' 디스커버리 제도, 우리나라만 없다고?
◇ 박기태 변호사(이하 박기태)> 안녕하세요. 박기태입니다. 각종 사건 사고에서 여러분을 구해드리겠습니다. 사건파일 오늘의 주제는 ‘특이한 한국법’ 내용입니다. 세계 각국은 소송에서 증거를 숨기지 못하도록 샅샅이 조사하고 제출하도록 하는 ’상대방 증거 탐색‘제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증거 탐색‘ 제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피고들은 증거를 제출하지 않고 입증책임 뒤에 숨기만 해도, 재판을 이길 수 있습니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왜 필요한지 법무법인 법승의 박다솜 변호사와 알아보겠습니다.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 박다솜 변호사(이하 박다솜)> 네, 안녕하세요.
◇ 박기태> 먼저, 디스커버리 제도가 어떤 건지 설명해주시죠.
◆ 박다솜> 법률 관련 종사자가 아니시라면 ‘디스커버리 제도’가 생소하실 텐데요. ‘디스커버리 제도’는 우리말로 쉽게 표현하자면 ‘증거개시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소송법상의 당사자 사이에 쌍방이 소지하고 있는 증거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양측 당사자들이 서로가 가진 증거와 서류를 상호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이러한 ‘증거개시 제도’는 상대방이 가진 증거들을 제출받아 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현실에 존재하는 증거의 누락 없이 쟁점을 명확히 하도록 해주고 사실관계가 제대로 정리될 수 있도록 해주는 커다란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한편, 법원이 증거제출을 명령했는데 제출을 거부하면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되므로, 사실상 자료제출을 강제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또한 이로써 법원의 심리 기간도 단축되고 재판 절차 역시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또 하급심에서부터 쟁점과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여 상소율을 낮추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나아가 민사, 행정 등 재판과정에서 증거가 적극적으로 공개되어 검토될 수 있으므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도 현저하게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 박기태> 최근 아이폰 배터리 관련해서 집단 손해 배상 소송이 있었는데요. 이것이 디스커버리 제도와 관련이 있다고 하던데, 이유가 뭔가요?
◆ 박다솜> 최근 ‘애플이 신형 아이폰 판매를 위해 구형 모델의 배터리 성능을 고의로 떨어뜨렸다’는 의혹과 관련하여 국내 소비자들이 애플 본사와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결국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민사소송에서 '디스커버리 제도', 즉 증거개시 제도의 도입을 주장해왔는데요, ‘이번 판결이 디스커버리 제도의 부재로 인한 집단적 소비자 피해 구제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의견이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 박기태> 그렇다면 소송 내용을 더 자세히 살펴보죠.
◆ 박다솜> 애플은 2017년, 일부 아이폰 모델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적용하면서, 경우에 따라 성능을 저하하는 '성능 관리'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이후 같은 해 12월부터 일부 소비자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아이폰 운영체제(iOS) 업데이트를 한 뒤부터 성능이 눈에 띄게 저하됐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3월, 국내 아이폰 이용자들로 구성된 소비자 집단은 애플 본사와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1인당 20만 원씩 배상을 청구’하는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병합된 관련 사건까지 더하면 원고의 수는 약 6만 4000여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애플측은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면서 해당 아이폰 모델의 갑작스러운 전원 차단을 막기 위해 성능 저하 기능을 도입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 박기태> 1심 재판부가 원고 패소를 결정한 이유는 어떻게 보십니까?
◆ 박다솜> 판결 선고 당시에 서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부는 1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하면서, “(아이폰의) 성능 조절 기능이 반드시 사용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거나 불편을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용자로서는 전원이 예기치 않게 꺼지는 것보다 최고 성능이 일부 제한되더라도 전원이 꺼지지 않는 게 더 유용할 수 있다”며 “피고는 이 기능의 단점보다는 이로 인해 얻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신제품 구매 유도’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보았으며, 애플이 후속 제품에도 성능 조절 기능을 탑재한 점, 문제가 된 운영체제 업데이트에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불편한 점을 보완할 다른 개선 사항도 포함된 점을 이에 대한 근거로 들었습니다.
◇ 박기태> 궁금한 것이 디스커버리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해외 상황인데요. 같은 문제로 애플을 상대로 소송했는데, 결과는 달라졌죠?
◆ 박다솜> 미국과 이스라엘, 프랑스, 캐나다 등 해외에서도 애플을 상대로 ‘고의 성능저하'의혹과 관련하여 유사한 취지의 집단소송이 진행되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와는 달리 애플은 미국에서 제기된 집단소송과 관련하여 구형 아이폰 사용자 한 명당 25달러(약 2만9800원)씩, 총 5억 달러(6500억 원)를 지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또한 칠레에서도 소송에 참여한 각 사용자가 50달러(약 5만 6000원)씩 배상받게 됐습니다.
◇ 박기태> 디스커버리 제도와 관련된 현행 법률을 한번 짚어주시죠.
◆ 박다솜> 먼저 이 제도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입증책임’이라는 용어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입증책임’이란, 소송상 어느 증명이 필요한 사실이 진실인지 허위인지가 불명확할 때, 그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되어 법률판단을 받게 되는 당사자 일방의 위험 또는 불이익을 말합니다. 대법원은 ‘법률요건분류설’에 따라 권리의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은 권리근거규정에 해당하는 요건사실을 증명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가령 앞선 사례에서 불법행위 내지 채무불이행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를 할 경우 원고측에서 민법 제750조 내지 민법 제390조의 요건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다만, 소송법의 일반원칙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사건의 경우에는‘입증책임의 전환 또는 완화’가 이루어지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의료소송입니다. 의료소송과 관련하여 판례는 ‘손해 발생의 원인이 의료과실에 의한 것인지를 전문가인 의사가 아닌 보통인은 도저히 밝혀낼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는 이유로 ‘상당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다룬 사건과 같이 대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 등 수많은 사건들에서 증거의 편재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대기업에 의한 중소기업 특허 침해나 기술 유출 사건에서 중소기업 패소율은 2021년을 기준으로 75%에 달하는 상황입니다.
◇ 박기태> 네, 그러면 오늘 사건에 담긴 ‘법적 포인트’를 한 줄로 정리하고, 실제 법적 대응과 자문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디스커버리 제도에 대한 법관 인식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94%가 ‘현행 민사소송 제도하에서 법원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에 공감했습니다. ‘재판당사자가 정보·증거를 투명하게 공유해 분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에는 법관 85.9%가 동의했습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소송 전 양측 당사자가 증거를 서로 공개해 쟁점을 정리하는 절차로 재판 기간이 단축되고 소모적인 분쟁을 줄이는 효과가 있음을 절대 다수의 법조인들이 인정하고 있음에도 형식적 입증책임에만 따른 현실과 괴리된 재판이 오늘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디스커버리 제도’에 대해 법적으로 얘기 나눠봤는데요. 마지막으로, 관련해서 법적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 박다솜> 일부 소송들에서는 일방 당사자의 방대한 정보역량과 정보 우위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증거의 구조적 편재, 즉 일방 당사자에게만 증거가 잔뜩 쌓여 있고, 정작 그 증거에 대해서 원고는 알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경우 소송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하고 이를 통해 사법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인 디스커버리 제도를 전면 도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디스커버리 제도의 기본 취지가 ‘진실 발견’에 있는 만큼 ‘재판에 의한 부정의의 적립’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한국에도 하루빨리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 박기태> 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박다솜 변호사와 함께 했습니다.
◆ 박다솜> 감사합니다.
◇ 박기태> 생활 속 법률 히어로 박기태 변호사였습니다. 사건 파일에서 여러분의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내일도 사건에서 여러분들을 구해드릴 사건 파일, 함께 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