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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못 갚으면 사기일까? 채무불이행과 사기죄 [양원준 변호사]

조회수 : 44

 

 

법무법인 법승 양원준 파트너 변호사

 

 

‘돈을 빌려달라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친구를 잃는 일은 적지만, 돈을 빌려줌으로써 도리어 친구를 잃기는 쉽다’는 격언이 있다(쇼펜하우어). 돈은 모든 갈등의 원인이며, 거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송사의 본질적인 원인도 대부분 돈 때문이다.

 

필자가 변호사로서 경험한 바로는 실무에서 가장 많이 오는 사건의 유형도 대부분 ‘채무불이행’에서 출발한다. 쉽게 말해 돈을 줘야하는 사람이 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전세금을 주지 않아 발생하는 전세 사기, 돈을 빌려 놓고도 갚지 않아 발생하는 대여금 사기, 물건을 사고 대금을 줘야함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돈을 주지 않아 발생하는 물품대금 사기 등등. 물론 이는 민사적인 부분에서 먼저 다뤄져야 하는 문제이지만, 오늘은 형사 사건 그 중에서도 대여금 사기에 국한돼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돈을 빌려주고 갚지 못할 경우 어떤 경우에 사기죄에 해당할까? 대법원은 채무자가 ‘차용 당시’부터 변제의 의사나 능력이 없다는 점이 입증돼야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한다. 즉, "차용금의 편취에 의한 사기죄의 성립 여부는 차용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므로, 피고인이 차용 당시에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그 후에 차용금을 변제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순한 민사상의 채무불이행에 불과할 뿐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대법원 2016. 4. 28. 선고 2012도14516 판결).

 

대여금 사기 사건은 ‘차용 당시’부터 ‘편취의 의도가 있었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하는 특징 때문에 일반적인 사기 사건에 비해 불기소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처음(돈을 빌릴 때)부터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하는데, 단순히 대여금을 갚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편취의 의도가 인정되기가 여간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피의자의 재산상태, 다른 채무 존재 여부, 변제노력 유무 등을 종합하여 고려하지만 채무자가 차용 당시 가졌던 마음속의 생각을 어떻게 알 것인가? 즉, 범죄의 구성요건 입증이 어렵고, 민사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수사기관도 원칙적으로 민사적 해결을 권고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법원은 어떤 경우에 대여금 사기가 인정된다고 보았을까? 경제적 능력을 과장하여 실제로는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서 경제적으로 매우 여유가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한 경우나 자신의 재산 상태나 수입을 부풀려서 말한 경우 (대법원 1991. 5. 28. 선고 91도752 판결 참조), 변제능력을 은폐하여 이미 다수의 채무불이행 상태에 있으면서 이를 숨기고 대여금을 받거나 파산이나 회생 등 경제적 여건이 매우 어려운 상황임에도 이를 숨기고 대여금을 받은 경우(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7도8549 판결 참조), 그리고 허위로 자금용도를 고지하여 실제 사용 목적과 다른 용도를 허위로 고지하는 경우[예를 들어 특정 사업자금으로 사용하겠다고 거짓말하고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경우(대법원 1996. 2. 27. 선고 95도2828 판결 참조)] 등은 기망행위에 해당하여 사기죄가 인정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채권자는 대여금 사건에서 기망행위를 입증하기 위하여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할까? 먼저, 돈을 빌려줄 때부터, 금전거래가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는 기본이다. 차용증, 금전소비대차계약서, 입금증, 이체확인증, 통장거래내역, 대출신청서, 금융거래확인서 등 금융기관 관련 서류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부터 중요한데, 채무자의 경제적인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채무자로부터 직접 받으면 좋다. 부동산등기부등본, 소득증명서, 대출 내역 등 무엇이든 좋다. 핵심은 ‘채무자로부터’받는 것이다. 위 자료가 허위라면 더할 나위 없다. 그리고 꼭 거래의 전 과정을 문자메시지, 이메일, SNS 등 기록이 남는 방식으로 이용하거나, 전화를 한다면 녹음을 동해 음성기록을 남겨두기 바란다.

 

그 밖에도 대여 과정의 목격자나 중개인의 진술, 기타 거래사실을 알고 있는 제3자의 진술까지 확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돈을 받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안타깝게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위 과정은 추후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형사고소를 확실히 하기 위한 준비일 뿐(물론 민사소송을 할 때도 도움이 된다), 꼭 형사고소가 아니더라도 대여사실을 입증하면 민사소송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민사로 돈을 받기가 쉬웠던가? 돈을 한번이라도 빌려줘 본 사람은 안다. 돈을 빌려주는 순간부터 채권자는 을이 되고, 돈을 받는 과정은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럽다.

 

정리하면 돈을 갚지 않았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는 ‘사기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채권자에게 돈을 갚지 않은 채무자는 사기꾼보다 더 나쁘다. 사정없는 채무자는 없다지만 이 정도면 기망행위라고 평가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사례들도 많이 보았다. 또한, 입증의 어려움으로 형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반대로 사기가 의심되어 고소한 경우, 증거가 부족하더라도 처벌에 대한 압박을 느낀 채무자가 결과가 나오기 전에 돈을 변제하거나, 검찰 단계에서 형사 조정 제도를 통해 변제를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니, 아직 돈을 받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포기하지 마시라. 채권자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친구는 잃어도 되지만 돈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전국의 모든 채권자들이 한해가 가기 전 떼인 돈 받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출처 : https://www.fnnews.com/news/2025011011062208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