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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처벌되는지 알 수 없는 나라 [안성훈 변호사 칼럼]

조회수 : 167

 

지난 18일,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 변호사 모임(이하 '새변')은 “하급심 판결을 전면적으로 공개하라”는 성명을 냈다. 헌법 제109조가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며 판결문 공개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음에도 현재 법원은 하급심(1·2심) 판결문을 제한적으로 공개하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새변은 “누구보다 법치주의 원리원칙을 지켜야 하는 사법부가 헌법을 거스르면서까지 하급심 판결서 공개에 소극적인 것은 의무 해태”라고 꼬집었다. 어떤 이유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는 것인지, 또 사법부가 의무를 해태하는 것인지, 새변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안성훈 변호사의 칼럼을 통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그간 사회적으로 고려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형사사건이 발생했다. 예를 들어 가상화폐를 이용한 범죄라고 하자. 가상화폐의 법적 성격 등이 아직 법적으로 규명되지 않아 법원의 판단이 어떻게 정립될지 아직 예견하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그 범죄의 혐의를 받는 피의자 내지 피고인이나 그 사건을 처리하는 변호사 등은 그 사건이 처리된 선례를 아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다. 나아가 어떤 행위가 죄가 되고 아닌지를 알아야 하는 국민 입장에서도 그에 관해 선고된 판결의 내용을 즉시 파악하고 위법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비슷한 사례에 대해 몇 차례의 하급심 판결이 선고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사건의 규모가 작아 언론이 주목하지는 않은 사건이어서 언론에 그 내용의 일부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연달아 몇 개의 판결이 더 선고되었는데 심지어 그 내용이 다소간 다르다. 이때 그 혐의를 받는 당사자나 그를 변호하는 변호인이나 나아가 일반 국민은 그 정보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위와 같은 경우라면 판결은 ‘임의어 검색’을 통해서만 그 판결의 존재를 알고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미확정 판결문은 인터넷 열람 대상이 아니므로 인터넷으로 임의어 검색은 할 수 없다. 판결문 사본 신청은 ‘사건번호’를 알아야 하는데 그 사건번호를 알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일산에 위치한 법원도서관에 열람신청을 하여 허가 등을 받아 예약하여 방문해 판결문의 정보를 얻어야 할 텐데 제한된 시간 동안 판결문을 열람만 할 수 있다. 운 좋게 여기에서 그에 맞는 판결을 찾았다면 사건번호를 메모해서 판결문 사본 신청을 하여야 한다. 이렇게 절차가 번잡하다 보니 대부분의 경우에는 문제가 된 판결문들을 ‘확정이 된 후에야’ 알게 된다. 
 

 

국민의 알권리 위해 1·2심 판결문 전면 공개해야
판결문은 실시간으로 사회적 비평에 놓여야 한다

 

 

한 사건이 상고심까지 가 확정되기까지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이라면 새로운 유형의 범죄에 대하여 5년 이상을 지난 후에야 비로소 수범자인 국민이 해당 범죄에 대한 결과를 알 수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문제가 나중에야 비평의 대상에 올라 사후적으로만 다루어진다면 우리는 적시에 적절한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규범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놓치게 될 수 있다.

 

우리 헌법 제109조는 판결문의 공개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판결문 공개는 헌법의 명령이므로 국가기관은 그 명령을 따라야만 한다. 우리 법원은 판결문 공개의 원칙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인터넷 판결서 열람이나 사본 신청 또는 방문열람 등의 제도를 위와 같이 제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법들은 너무도 제한적이어서 사실상 판결문 공개의 원칙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인다. 인터넷 열람은 제한적인 임의어 검색, 대부분 텍스트 검색이 불가능한 이미지 형태의 PDF 파일로 제공되는 등 접근성과 편리성이 매우 떨어진다. 그리고 건별로 1,000원의 결제를 해야만 그 내용을 모두 볼 수 있고 그 방법도 편리하지 않아 신속하고 정확하게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고 불필요한 비용을 들여야 한다. 그나마도 미확정 판결문은 공개하지 않다가 2023. 1. 1. 이후 선고된 민사판결문에 대해서는 인터넷 열람을 허용하였으나 여전히 미확정 형사판결문은 그렇지 않다.

 

나아가 인터넷 열람이나 사본 신청의 대상이 되는 판결들도 모두 공개되는 것이 아니다. 영업비밀 보호 등 비공개결정이 있는 판결들도 입수가 어려운 것들이 많다. 소액사건 판결이나 변론 공개를 금지한 사건, 비밀 보호를 위한 열람 제한 결정이 있는 사건에 대한 판결 등은 검색․열람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액사건 비율이 민사 1심 사건의 70%를 넘는 현실을 고려하면 소액사건 판결의 미공개는 재판공개 원칙을 잠탈하는 수준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기업총수의 비위행위 등에 관하여 영업비밀을 이유로 공개를 제한하는 것도 국민의 알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경우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법원의 판결문 공개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충분하지 않은 수준이다. 미국은 판결문뿐만 아니라 법원에 제출되거나 현출되는 법정기록을 전부 공개하고 있으며 정보공개에 소극적일 것으로 생각되는 중국 또한 판결문을 전면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3월경 발표된 레가툼 번영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법신뢰지수는 167개국 중 155위를 기록했다. 국민이 판결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법원을 믿고 이해하는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사법신뢰 지수의 회복을 위해서도 판결문 공개가 필요하다.

 

법규범은 수범자가 그 법규범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적용 상황에 대해 예측할 수 있어야 실질적으로 효력을 발할 수 있다. 국민이 적시에 그리고 쉬운 방식으로 판결문에 접근할 수 있어야 그것이 가능하다.

 

판결문은 실시간으로 사회적 비평에 놓여야 한다. 법률전문가들과 사회지식인들이 하급심 판결문을 비평하며 다양한 법률적 쟁점과 사회적 쟁점을 논의되어야 같은 종류의 사안에 대한 법원 간의 다른 판단 기준도 신속히 적절한 방식으로 조정될 것이고 상급심에서 더욱 성숙한 법리가 도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안성훈 변호사(법무법인 법승)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 변호사 모임 운영위원

 

 


출처 :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743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