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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방침에 반대하는 의사단체의 집회에 제약사 영업사원이 강제적으로 참석을 요구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제약업계에선 암묵적 리베이트 유사 행위가 비일비재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지난 2일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의대증원 반대 집회에 의사들이 제약회사 직원들의 참석을 강압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사복 입고 와서 의사인 척 시위에 참여하라고 한다. 시위에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은 제약회사 직원일 것”이라는 글이 올라왔다가 이내 삭제됐다.
법조계 등에선 이번 사안이 실제라면 리베이트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법 제23조5에 따르면 의료인과 의료기관 개설자 및 종사자는 의약품 공급자에게 의약품 채택이나 거래 유지 등을 목적으로 금전, 편익, 향응 등 경제적 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승우 법무법인 법승 대표변호사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의사들이 지배적 관계를 이용해 거래 상대에게 관련 업무가 아닌 일 등을 반복적으로 요구했다면 리베이트 구조로 볼 수 있다”며 “반복적 용역 제공은 시간, 돈과 연계되며 결국 금전적 가치를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약업계 영업 실태를 들여다보면 경제적 이익 외 물리적 지원을 통해 사실상 리베이트가 행해지는 사례가 잇따른다. 6일 제약 영업직원들로부터 확인한 내용을 종합하면 △지방 출장 대리운전 △가족 행사 참석 및 보조 △학회·예비군 대리 출석 △음식 배달 △막힌 변기 뚫기 △창고 정리 △심부름 등 사소한 업무들이 의사들의 편의를 위해 이뤄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의학갤러리에 관련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자신을 제약사 영업사원이라고 밝힌 A씨는 ‘영맨의 일상 알려줄게’라는 제목으로 병원장과 주고받은 메시지 일부를 공개했다. A씨에 따르면 “노트북 외장하드를 교체해달라” “A4 크기의 액자를 제작해달라” “한글 프로그램을 깔아달라” “원무과 직원 이력서를 검토해달라” 등 병원장의 사적 부탁이 반복됐다. A씨는 “점점 더 더러운 일을 시킨다”며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지방에서 5년째 제약사 영업직 업무를 보고 있는 B씨는 “최근에는 리베이트 관련 처벌이 강화돼 예전과 달리 의사들이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일이 줄었다”면서도 “여전히 학술대회 등이 있을 때 지방에서 서울까지 대신 운전하거나 자녀들의 하원을 챙기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교수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중소 제약사나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제약사 간 경쟁이 워낙 치열해 의사가 요구하는 것이 있으면 금전적이든 물리적이든 가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1년 전 제약사 영업을 그만둔 C씨는 “의약품을 구매하거나 바꾸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해주는 일이기 때문에 실상 리베이트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가 갑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면 이같은 상황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의사협회 사건을 통해 리베이트의 정의를 확장하고 의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정부는 의사가 제약사 영업사원에게 집회 참여를 강요했다면 법적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5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경찰청과 함께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며 “사실인 것으로 확인된다면 의료법령 위반으로 여겨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경찰청 역시 의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제약사 직원에게 집회 참여를 강요하거나 각종 리베이트를 받는 등 불법적 일을 하지 않았는지 첩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협 비대위)는 제약사 영업사원의 집회 참여를 강제했다는 글을 작성한 이를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제70조 2항을 위반한 혐의로 고소했다.
비대위는 “정부가 제약회사에 집회 참석을 지시하거나 요구한 사례를 조사하겠다고 공표했으나 접수된 신고 건수는 0건이다”라고 했다. 또 “의협 비대위도 산하단체 및 집회 참석자들을 통해 알아봤지만 관련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피고소인은 존재하지 않는 일을 허위로 작성해 ‘의사들’이라는 단어를 고의적으로 써서 회원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