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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형법정주의 원칙 및 의미

 

 

 

죄형 법정주의 원칙 및 의미

 

 

민사 재판에 적용되는 법 규정 등은 유사한 사안의 것을 유추하여 적용하는 것이 비교적 폭 넓게 허용되고 있습니다. 반면 사람의 형사처벌을 결정하는 규범인 형사처벌 규정은 유추해석이 금지될 뿐만 아니라 엄격한 죄형 법정주의의 기준에 구속됩니다. 여기서의 죄형 법정주의란 무엇일까요. 이는 죄, 곧 처벌되는 범죄와 형, 그 범죄에 대한 처벌의 형량이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처벌되는 범죄와 그 처벌 형량만 법률로 규정되면 그 규정 내용이 추상적이라도 무관한지 문제시될 수 있습니다. 가령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을 경우 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어디까지가 ‘악영향’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죄형 법정주의의 의미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현대 형사법의 아버지들(주로 유럽 분들이지요)은 ‘죄형 법정주의는 명확성의 원칙이란 파생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누누이 주장해 왔습니다. 이를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 국의 형사법 해석에 있어 죄형 법정주의는 주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대법원은 “죄형 법정주의의 원칙에서 파생되는 명확성의 원칙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명확하여야 한다고 하여 모든 구성요건을 단순한 서술적 개념으로 규정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다소 광범위하여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을 필요로 하는 개념을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통상의 해석방법에 의하여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면 당해 처벌법규의 보호법익과 금지된 행위 및 처벌의 종류와 정도를 알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면 처벌법규의 명확성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충적으로 어떠한 법규범이 명확한지에 대한 여부는 ‘그 법규범이 수범자에게 법규의 의미내용을 알 수 있도록 공정한 고지를 하여 예측가능성을 주고 있는지 여부’, ‘그 법규범이 법을 해석ㆍ집행하는 기관에게 충분한 의미내용을 규율하여 자의적인 법해석이나 법집행이 배제되는지 여부’를 통해 판단되어집니다. 정리하자면 ‘예측가능성 및 자의적 법집행 배제가 확보되는지 여부’에 따라 법규범의 명확성을 판단한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결과적으로 법규범의 의미내용은 그 문언뿐만 아니라 입법 목적이나 입법 취지, 입법 연혁, 그리고 법규범의 체계적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해석방법에 의하여 구체화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법규범이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는 위와 같은 해석방법에 의하여 그 의미내용을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해석기준을 얻을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 것을 보니, 명확하지 않은 것을 명확하다고 설명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리 송송 합니다. 본래 ‘명확하다’는 말의 의미는 일견 보거나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떠한 내용인지 이해할 수 있고, 적용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명확하다는 의미를 복잡하고 힘들게 구성하다 보니 저희 같은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프레드 로델 지음, 이승훈 옮김/ 후마니타스)」라는 책도 나왔겠지요.

 

이와 관련해 대법원 판례를 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판례의 원심은 “실제 납세의무자임에도 불구하고 34회에 걸쳐 수입신고를 하면서 납세의무자와 사업자등록번호를 허위신고한 공소사실에도 불구하고 관련법 어디에도 ‘납세의무자’를 신고대상으로 명시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는다”며  “‘사업자등록번호’를 신고사항으로 정한 취지가 실질적으로 ‘납세의무자’를 신고사항으로 정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수범자의 예측가능성을 넘어서 처벌 규정의 명확성 원칙에 반할 뿐더러 법문상 근거도 없이 자의적으로 처벌 범위를 넓히는 해석”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이를 무죄로 판단하게 됩니다.

 

하지만 구 관세법은 수입신고를 하지 아니하고 물품을 수입한 자 등을 밀수입죄(제269조)로, 수입신고를 한 경우에도 과세가격ㆍ관세율 등 세액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허위로 신고한 자 등을 관세포탈죄(제270조)로 각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그에 대하여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는 한편, 세액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는 부수적인 신고사항 등을 허위로 신고한 이에 대하여는 허위신고죄(제276조)를 두어 벌금형만으로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 관세법상 형벌규정의 입법체계는 무신고수입행위 또는 세액 결정에 영향을 주는 주요 사항에 대한 허위신고행위가 아니더라도 관세법령이 정하는 신고사항에 대한 허위신고행위에 대하여는 이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관세납부의무에 대해 구 관세법 제19조 제1항 제1호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관세의 납세의무자가 된다”라고 정하면서 제1호 본문에서 “수입신고를 한 물품인 경우에는 그 물품을 수입한 화주”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 물품을 수입한 화주’라고 함은 그 물품을 수입한 실제 소유자를 의미하고, 그 물품을 수입한 실제 소유자인지 여부는 구체적으로 수출자와의 교섭ㆍ신용장의 개설ㆍ대금의 결제 등 수입절차의 관여 방법, 수입화물의 국내에서의 처분ㆍ판매의 방법의 실태, 당해 수입으로 인한 이익의 귀속관계 등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구 관세법 제19조 제1항 제1호 가목이 수입을 위탁받아 수입업체가 대행수입한 물품의 경우 ‘그 물품의 수입을 위탁한 자’를 화주로 보아 납세의무자로 정하고 있는 것은 위와 같은 취지를 확인하고 있는 규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구 관세법 시행령(2013. 2. 15. 대통령령 제2437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46조 제1항 제5호가 ‘사업자등록번호ㆍ통관고유부호’를 물품 수입시의 신고사항으로 정하고 있는 규정은 ‘수입신고명의의 대여 등으로 인하여 물품의 수입신고명의인과 실제로 납세의무를 부담하는 이가 상이한 경우 관세의 부과ㆍ징수 및 수입물품의 통관이 부적정할 확률이 높습니다. 때문에 관세수입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형식상의 신고명의인과는 별도로 실제로 물품을 수입한 자, 즉 화주인 납세의무자에 관한 신고의무를 정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해석 가능합니다.

 

대법원은 이에 따라 “위 시행령 규정은 이러한 납세의무자에 관한 신고의무를 전제로 그 납세의무자의 구체적인 특정을 위하여 그의 사업자등록번호 등을 신고하도록 정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며 “이러한 해석은 통상의 해석방법에 의하여 그 의미내용을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서, 처벌법규의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거나 자의적으로 처벌 범위를 넓히는 해석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까지 죄형 법정주의 관점에서의 법령해석에 대한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실제 정보화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법령이 복잡하고 길면, 많은 비용을 소모시키므로 구체성의 요구를 모두 달성시킬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정보처리 기술이 고도화 되어 엄청난 양의 문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시대이므로 명확성의 요구도 과거보다 더욱 엄격하게, 더욱 높게 요청된다고 봅니다. 즉, 지금 많은 형사법 규정이 명확성의 원칙을 충족하였는지를 위의 대법원 판례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개별 법령에서 정확한 용어 정의를 내리고, 사회의 일반 용어 사용례를 심도 깊게 반영하여 대부분의 형사처벌규정을 서술화 하고, 중학교 졸업 수준의 학생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바꾸어 나가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에 부합하는 법률의 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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