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전화
학교폭력 사건에서 재판 불출석으로 의뢰인을 패소하게 한 권경애(59·사법연수원 33기) 변호사가 로펌과 공동으로 의뢰인에게 5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경우'라며 변호사업계의 신뢰를 위해 징계 수위 등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5단독 노한동 판사는 11일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후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박모 양의 어머니 이기철 씨가 권 변호사와 법무법인 해미르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2023가단5126679).
앞서 법원은 권 변호사 등이 이 씨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했으나, 유족 측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정식 선고가 나오게 됐다.
노 판사는 권 변호사에 대해 "담당 변호사로서 법무법인과 의뢰인 사이의 소송위임계약에 따라 선량한 주의로 소송을 수행할 의무를 부담하는데, 3회 불출석에 따른 항소 취하 간주를 포함한 관련 민사사건 2심 불성실 수행, 민사사건 2심 판결 미고지로 인한 상고기간 도과, 관련 민사사건 1심 2회 불출석의 잘못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노 판사는 법무법인에 대해서도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에 대해서는 법무법인이 채무초과 상태에 있거나 강제집행으로 채권의 만족을 얻지 못한 때가 아니기 때문에 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노 판사는 "해당 사건의 승패를 떠나 상고 기회 등을 상실한 이 씨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며 위자료 5000만 원을 인정했다.
하지만 관련 민사사건에서 승소했을 개연성이 있다고는 보기 어려워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다는 이 씨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권 변호사는 2015년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후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박 양의 어머니 이기철 씨를 대리해 2016년 가해자들과 서울특별시, 중·고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유족 측 대리를 맡았다. 지난해 1심에서 일부 패소에 불복한 유족 측은 항소를 제기했지만, 권 변호사가 2심 재판에 세 차례 출석하지 않아 항소가 취하됐다. 반면 가해자 측의 항소가 받아들여져 재판 결과는 원고 일부승소에서 원고 패소로 뒤집혔다. 특히 권 변호사는 2심 패소 사실을 3개월간 유족에 알리지 않았고, 유족 측이 상고하지 못한 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러한 사태는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려졌고, 이 씨는 지난해 4월 권 변호사와 권 변호사가 근무했던 법무법인, 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 등을 상대로 2억 원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대한변협은 지난해 6월 징계위원회를 열고 권 변호사에 대한 징계 처분을 논의했고, 8월 정직 1년의 징계를 내렸다.
이번 사안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변호사의 의무를 저버린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반응과 함께 변호사업계 신뢰를 위해 유사 사례가 발생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변호사 수가 많아지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변호사 업무의 기본적인 부분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사건"이라며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유사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징계 등을 강화해 같은 경우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우(48·사법연수원 37기) 법무법인 법승 대표변호사는 "다른 업무도 아니라, 재판에 불출석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는 5000만 원의 손해배상 금액이 적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통상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인정 액수로 봤을 때는 큰 액수가 선고된 것 같다"고 밝혔다.